며칠 전 후배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던 중, 아래와 같은 말이 나왔다.
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교수는 후대에게 존경받지 못할 것 같다.
후배: 그렇네요. 우리 교수의 지도교수인 K모 교수의 경우를 봐도...
나: 그러고 보니 그렇네. 며느리가 시어머니 닮아가는 이치구만!
지도교수의 지도교수인 K모 교수의 현실태를 보면 그렇다. 학문적으로는 (비록 월드 클래스 레벨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고, 연장자로서의 권위는 있다. 하지만 그 아래 세대 교수와 연구원들은 웬만하면 그 교수와 관련되고 싶어하지 않아 하고, 그 누구의 입에서도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행적을 폭로하며 이를 가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빨리 그 영향력이 없어지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측이다.
내 지도교수는 K모 교수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고 말할 수 있긴 하지만, 직계 제자인 우리들이 봤을 때는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최소한 그는 제자들에게조차 존경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 말이다. 아마 그 자세한 이유는 여기서 다룰 수 없을 듯하다. 워낙 좁은 동네라서 까딱하면 내 신분이 위험해질 지도 모르니 말이다.
2주 반 정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교수가 귀국했다. 실제 만나지는 못했지만 오늘 귀국한다고 했으니 아마 그럴 것이다. 지난 출장 동안 교수는 토,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연구실에 전화를 걸었다. 항상 학생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는 생각인 듯하다. 덕분에, 실질적으로 이제 졸업장 받을 일만 남은 내가 그 전화에 시달린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다. 안그래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 속이 어지러운 상태에 전화를 받고 나면 괜히 신경질이 날 정도였다. 박사 후 연구원이 없는 우리 연구실에서 고참 중의 고참이 되고 보니 교수의 행동과 말에서 보이는 심리 상태까지 거울 보듯이 들여다 보이는 듯하고,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내가 가장 그를 이해해야 할 입장인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정도의 달인은 될 수 없을 것같다. 내색을 외부에 보이지 않는 게 고작이다.
좀 다른 이야기를 꺼내볼까.
나와 같이 일하던 선배가 있었다. 지금은 졸업 후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다. 나와 그 선배가 지도교수에게 어떤 질문을 받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하기보다 잠시 생각을 해보고 답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면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선배는 일단 어떻게 해서든 그 질문을 받은 자리에서 대답을 하고, 결코 그 생각이 그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때때로 어떤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일단 그 일을 진행해보고 알려주겠다고 답하고, 그 선배는 열심히 해서 다음 날이라도 그 결과를 보이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말대로 금방 결과를 보일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교수는 그 대답으로 만족한다). 어떤 자세가 옳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위와 같은 차이때문에 교수는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물론, 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나는 조금 삐딱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고, 가끔은 격하게 토론을 하기도 한다. 결국 사람에게 인상이 남기 쉬운 것은 부정적인 면이고, 그 선배는 나와 대조되는 자세를 보였기에 상대적으로 득이 많았다.
결국 내 잘못일 지도 모르겠다. 교수가 질문을 하면 먼저 Yes라고 답하고, 일의 진행에 대해 물으면 곧 결과를 내 보이겠다고 장담했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결코 '충실한 개'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내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말이다.
졸업을 해도 당분간은 대학원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더 이상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어딘가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서 생각을 가다듬고 싶다.